베르.
앞에 장애물이 있어. 부릉부릉, 해도 돼?
나지막한 대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눈을 떴다.
지루함을 이기는 데에는 시야를 차단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버스에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머리도 기억도 잃은 내게 떠오르는 방법이 이것뿐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
그래, 계속 지나가자고.
응. 덜컹덜컹.
<이봐…>
한 번 떠 버린 눈을 다시 감기에는 미묘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마침, 신경 쓰일 정도로 수염이 자란 남자가 눈에 띄었다.
<벌… 아니, 안경 낀 양반.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 알아? >
…수염보다 눈에 띄는 것이 있었기에, 말이 헛나와 버렸다.
…방금 벌레 양반이라고 부르려고 했지?
다시 한번 말하자면, 내 이름은 그레고르요.
당신이 시계 대가리가 아니라, 단테라고 불리듯이.
…쓸만한 변명을 찾지 못해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어이, 기사 양반.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자면, 내 이름은 카론이요.
당신이 벌레 양반이 아니라 그레고르라고 불리듯이.
…….
<한 방 먹었군, 그레고르.>
하하, 본전도 못 건졌네.
…베르가 말했어.
'수감자들은 4구로 간다.'
사아아아구?! 방금 4구라고 말했는가?!
그곳은 연두낭자의 출신지로 유명하지! 영웅의 발자취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네. 바야흐로….
아까부터 시끄럽게 쫑알쫑알…
입 다물고 조용히 좀 가지?
나는 아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네만!
말대답하지 말라고!
…이봐요, 본인이 더 시끄럽다는 건 알아요?
…죽어도 살아난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야. 한 번만 더 주둥이 놀려봐.
옳은 말을 했는데도 돌아오는 게 폭력이라니, 수준 알만하네요.
…하.
나는 고민했다.
말려야 하는 걸까? 관리자의 위엄이라던가, 권위를 보여줘야 할 시기인 걸까? 어렴풋이 남은 기억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러분, 지나친 흥분은…>
이거, 잠깐 한 눈이라도 팔려고 하면 사고를 치는군.
너희 넷. 이번 달 버스 청소다.
어째서! 본인은 정의를 구현했을 뿐인 것을!
잠깐! 내 옷 빨래도 포함시켜줘. 피는 와인이랑은 다르게 잘 안 빠진단 말이야. 씨잉, 비싼 건데…
아무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청소 당번들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당연히 이자들이 살아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정작 부활을 담당하는 나는 어떻게 되살리는지도 모르는데…
단테, 시계를 돌려주시겠습니까.
<시계를… 돌리라고?>
…하.
그런 모양새면 어리둥절한 표정이라는 건가. 기억해두죠.
파우스트 씨.
…….
베르길리우스가 귀찮다는 듯이 파우스트에게 고갯짓을 하며 나를 가리킨다.
파우스트도 작게 한숨을 쉬긴 했지만, 의무는 게을리하진 않겠다는 듯 자리로 다가왔다.
처음 만났던 날에도 당신이 했던 일을 말하는 거예요, 단테. 그때는 본능으로 해냈던 거겠지만.
자, 다시 해보죠. 눈을 감으세요.
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야를 차단하는 것은 아까도 했었지.
파우스트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사실 문은 어디에나 있어요.
그러나 당신에게만 보이죠. 왜냐하면 당신의 하늘엔 별이 지지 않았으니까.
문득, 시야에 빛이 새어 들어온다는 감각이 느껴졌다.
눈을 뜨는 감각으로 빛을 받아들였다.
<…끄아아악!>
목과 머리에 끔찍한 고통이 퍼져나간다.
죽어버리고만 싶은 아픔이 언제 까지고 이어진다.
근육과 뼈가 서로 뒤엉켜 기괴하게 꼬여가는 느낌이 영원과 같이 느껴진다.
나의 다리는 그러한 통각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단련이 되어 있지는 않았고, 피 웅덩이 위에 힘없이 무릎을 꿇고 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