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의 공기는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로쟈의 시답잖은 소리, 혹은 히스클리프가 다른 누구 (아마도 돈키호테나 싱클레어 중 하나였을 것이다)한테 의미 없는 시비를 거는 듯한 소리라던가.
라이터 기름을 다 썼는지 불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료슈의 목소리라던가.
크고 작은 소동 가운데에서, 적어도 그레고르 만큼은 분위기를 환기해줄 의지가 있는 유일한 수감자였으나…
…….
지금은 우리 중 제일 조용한 수감자가 되어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이라도 하는 듯, 그저 창문 밖만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을 뿐.
…….
한 가지 확실한 건.
버스의 분위기를 이따위로 만든 주범이 베르길리우스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 황금가지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어떤 개고생을 했고,
죽을 고비를 (물론 실제로 죽었던 이들도 있었지만) 몇 번이나 넘겼는지, 그러는 와중에 또 얼마나 많은 퇴사의 위기를 겪었는지.
베르길리우스는 도통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이러니 수감자들의 불만이 버스 안을 꽉 메워 버리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처사일 것이다.
결국, 참다못한 이스마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제 다음 장소는 어디인지 정도는 말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 실례했군.
너희에게 임무를 설명해줄 가치가 있을지 고민하던 참이었어.
하, 나 서운해지려고 해.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식일수록 더 품어야 된다는 거 몰라?
간곡히 부탁하건대, 이번만큼은 망신을 시켜주지 않으면 좋겠어.
오합지졸을 데리고 소풍 가는 교사로 보이고 싶진 않으니까.
특히 우리 로지온에겐 기대가 더욱 커. 이번엔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응? 내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모르는 곳까지 가이드 하기에는…
걱정 마.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곳일 테니.
돈에 잠길 수도, 말라죽을 수도 있는 환락의 둥지.
J사다.
…….
좋아, 이젠 로쟈까지 입을 닫아버렸네.
뭐, 이참에 한탕 두둑하게 챙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야, 도착하면 아무나 깨워라.
…공교롭게도 이번엔 지부 앞까지 모셔다 두진 못하게 되었습니다, 손님.
카론, 정차.
…….
…? 카론?
‘정차’가 뭐야?
멈추란 뜻이다.
멈추는 건 빨간색. 카론이 맛 없어하는 빨간색.
카론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느닷없이 브레이크를 밟았고, 대부분의 수감자는 자리에서 나동그라지거나 앞 좌석에 얼굴을 부딪치고 말았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고함과 불평불만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수감자들이 정확히 무슨 말을 뱉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태반은 욕지거리인 것 같으니, 못 알아들은 게 다행일지도 모르지.
힘이 넘치는 건 좋군. 내려.
으음… 목적지까진 한참 남았던데… 아~ 택시를 불러줄 건가요?
…파우스트 씨가 자세히 설명해주겠지만, 이번엔 지난번 임무와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겁니다, 단테.
왜냐하면 이번에 황금가지를 탈환해야 할 곳은…
카지노의 지하니까.
설마, 저 골목 한 가운데에 있는 번쩍번쩍한 건물들인가?
그래, 저것들 중 하나다.
지난번 잠입했던 로보토미 지부는 오랫동안 방치된 곳이었죠.
그럼… 그게 특수한 경우였다는 뜻인가요?
이렇게 보면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직원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전 작전은 왜 그렇게 무참하게 망쳤을까.
…….
황금가지는 많은 기술이 응축된 강력한 에너지원이다.
강한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돈과 사람들을 불러오고 순식간에 그 위에 문명이 생겨버리지.
그렇기에, 이후로 방문할 곳도 다른 집단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을 가능성이 크죠.
…또한, 카지노 외에 온갖 곳들을 방문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처음 임무는 비교적 쉬운 편이었다는 뜻이기도 하지. 멋들어지게 실패해버렸지만.
<…저 친구 원래 저렇게 뒤끝이 길어?>
…흠흠.
모르지~ 단테나 우리나 봤던 기간은 별반 차이가 없으니까.
뭐라 그랬지? ‘림버스 컴퍼니에 입사한 걸 환영한다. 나는 안내자, 베르길리우스라고 하지.’ 라면서…
핫! 방금 되게 잘 따라 하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무게를 엄청 잡긴 했지. 입사하자마자 퇴직원을 내도 되는지 물어볼 뻔했다니까.
<아마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무슨 소리요! 그것은 역사적인 날이었지! 특색 해결사 붉은시선의 부름을 받는다는 건! 정말이지, 영광스러운…
아, 그래도 한 명 정도는 팬이 있었나 봐.
우후후, 그러게나 말이야.
어느새 기운을 회복한 로쟈와 그레고르가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말이 필요 이상으로 많군. 버스 안에서의 세 번째 규칙을 만들고 싶게 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 거, 직원들끼리 상사 욕 좀 할 수 있지. 되게 쩨쩨하네.
다음엔 쩨쩨한 내가 듣지 못하는 곳에서 해줬으면 좋겠어.
난 보기보다 상처를 잘 받거든.
다들 이만 하차하지. 이번에는 부디 황금가지를 든 채로 만나게 되면 좋겠군.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건데?
혹시 모르지. 카론이 갑자기 개폐 버튼을 잊어버려서 문이 안 열리게 된다던가.
버튼, 빨간색. 맛없는 색이야.
…이거, 순 미친놈…
내머.
내머가 뭔데?
내리자, 머저리들. 이란 뜻이다.
히스클리프는 입안 가득 욕지거리가 올라온 듯이 료슈를 쏘아보다가, 이내 한쪽으로 크게 한숨만 내쉬었다.
죽여서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걸 깨달은 듯, 체념한 모습이 그답지는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