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눈을 피해 지하실 열쇠를 몰래 훔친 후, 나는 약속했던 대로 크로머와 만나 지하실로 내려갔다.
크로머가 안내한 곳은 지하실 속 좁은 환풍구였다.
환풍구를 한참 기어가자, 어둡고 매캐한 냄새가 가까워지고 쥐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옷은 점점 더러워지고 있었고, 목은 말라오며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져만 갔다.
그때, 여태까지 와는 다른 냄새가 주변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너도 느껴지지?
크로머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에 뭔가 있는 거야…!
만약 돌아가야 할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다면 지금일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도 그녀를 만류하고 온갖 달콤한 회유를 끼얹으며 다음을 기약하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그따위 사탕발림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만 나는, 갑자기 사악한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악당들과 같은 세계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였을까.
나는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어렴풋하지만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면서.
뒤에서 바람을 타고 크로머의 오싹한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다음 날 크로머는 아무렇지 않게 학교에 나왔다.
싱클레어, 내게 귀중한 것을 보여줘서 정말 고마워.
이건 내 보답이야.
그러더니 그녀는 정체 모를 동전 두 개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항상 가지고 있도록 해. 알았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 후 매일 밤, 환풍구 너머의 그 풍경은 악몽처럼 나를 괴롭혀 댔고.
나는 자연스레 크로머를 피하게 되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과 기시감에 절여져 떨어 댈 내가 그려졌다.
그러나 아직 크로머에게는 받아내야 할 것이 있었다.
지하실 열쇠.
만약 부모님이 우연히라도 열쇠 정리를 하는 날엔 금방 들통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따뜻한 세계에 계시는 부모님을 처음으로 배신했고…
더 이상 그들의 세계와는 같은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정 당하는 것이 싫어 두려움에 떨었다.
크로머… 이제 돌려주지 않을래?
뭘 말이야?
지하실… 열쇠…
…풉.
용기를 쥐어 짜낸 어느 날.
크로머는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는 웃음을 터트려 댔고, 겁에 질린 나는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푸하하하!!!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쩔쩔매나 했더니…
좋아, 돌려줄게. 싱클레어, 열쇠는 이제 우리한테 필요 없거든.
그리고 말이야…
네 원망은 틀림없이 이뤄질 거야, 싱클레어. 의체 시술을 받지 않고 싶다는 거 말이야.
약속 기억하지? 너는 내 원망을 이뤄줬거든. 그 보답이야.
열쇠를 받았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혀 크로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했던 내 무지함을 저주한다.
크로머가 말하는 ‘우리'가 누구였는지.
왜 이제는 필요 없다고 한 건지, 내 원망을 어떤 식으로 이뤄주겠다는 소리인지…
단 한 마디도 묻지 않았던 내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저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