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 데미안…
네가 스스로 운명을 바꾸었구나, 싱클레어.
너는 아직 겁쟁이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야. 두려움 역시 완전히 놓진 못한 거 같네.
그때도 말했지?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건…
그 누군가에게…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주었기 때문이라고…
맞아.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이 너를 길들이는 게 싫어.
그래서 저 크로머를 사라지게 했어.
데미안이라는 자는 곧 앞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주 가벼운 여행이라도 떠나듯이.
세상은 곧 새로운 탄생을 향해 갈 거야. 그리고 그곳에는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갈 수 있어.
싱클레어, 너도 그중 하나야.
대답하지 못한 채 싱클레어는 정신을 잃었고…
데미안이라 자칭한 자는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크로머는… 옛날 옛적에 사람들이 믿었다던 신님이 되려고 했어. 싱클레어는 그 거름이 될 뻔했고.
하지만 알은 혼자서 깨야 하는 거야.
크로머는 꽤 노력했어. 싱클레어가 첫 번째 동전을 잃을 때와 똑같은 상황을 만들려고 이런저런 수도 쓰고 말이야.
크리스마스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결국 자기들이 그렇게 싫어하던, ‘가짜’를 꾸미고 있었다는 건 아이러니야. 그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는 누구지?>
반가워, 단테.
당신이, 잠깐동안 싱클레어를 길들여 줄 어른이구나.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는, 때가 되면 알 수 있을 거야.
<…?!>
싱클레어가 마음의 힘을 굳게 믿고 날아올라서…
응. 아름다운 별과 하나가 될 날이 올 때.
…그때 나는 다시 돌아올 거야.
그날까지 싱클레어를 잘 부탁해. 단테.
<너… 내 말이 들려?>
나는 모든 지저귐을 들을 수 있어, 단테. 당연히 당신의 목소리도 들릴 수밖에.
언제나 그렇듯이…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으니까 말이야.
푸른 목도리를 두른 소년은 어느새 사라졌고…
언덕들이 녹아내리며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진흙과 살이 한데 섞여 내려간다.
그 앞엔 황금 가지 하나가 따스하게 빛난 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싱클레어의 세계 역시 천천히 녹아내린다.
나는 상반만이 남은 몸으로 간신히 기어, 싱클레어에게로 나아간다.
…….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나도 그러했다. 그 덕에 나는 시곗바늘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관리자 노릇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고.
죽어가며 깨우쳤던…
현명한 관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말은…
<네 잘못이었을 수도 있어, 싱클레어.>
<그러면 뭐 어때…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실수였어.>
<거기에 너무 너를 옭아매지 마.>
녹다 남은 오른팔로 그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싱클레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실 모든 것의 잘잘못을 따지고 올라가자면 끝이 없다.
각자가 저마다의 죄를 짊어지고 이 버스에 오르기로 결심한 것에도.
내가 머리와 기억을 잃어버린 채 관리자라는 역할을 떠맡게 된 것도.
…근간을 따지다 보면 원인은 스스로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실에만 매몰된다면 다음 걸음을 나아갈 수 없다.
…발견했습니다!
모두가 처참히 널브러진 곳에 여러 명의 구둣발 소리가 들린다.
…베르길리우스가 상황을 파악하고 애프터 팀을 부른 것이겠지.
이 자인 것 같습니다. 지금 주입합니까?
다른 자들은 이 자만 생존해 있다면 살아날 수 있다. 이 자의 신체를 수복하는 데에 전부 쓰도록 한다.
<윽…?!>
어깻죽지에 무언가 꽂히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녹아버린 몸의 부위에서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분이 지원해주신 HP앰플은 3개입니다. 전부 주입합니까?
재생 경과를 지켜보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사용하도록.
버스 녀석들… 하여간 특색 하나 잘 만나서 호강을 누리네. K사에도 인맥이 있고 말이야…
…을 …인했습니다. 추…
나의 주변을 둘러싼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싱클레어의 절규가 섞인 울음이 낮고, 그리고 조용하게 울려 퍼진다.
그렇게, 우리의 세 번째 작전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막을 내렸다.
황금가지를 탈환했지만 우리는 패배했다.
하지만 다들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는 듯 버스는 평소보다 활기찼다.
닭꼬치 개수는 인원수에 딱 맞게 사 왔으니까 모자란다는 소리가 들리면 범인 색출은 알아서 하도록.
우와, 신기하게 생겼네요. 왜 닭을 꼬치에 꽂는 건가요?
내가 살던 곳에서도… 이런 음식을 본 것 같소.
달콤한 냄새. 메피가 좋아하는 냄새.
짐짓 신났는지 카론이 속도를 올렸다.
카론이 또다시 낯익은 노래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곡인지 알 것 같았다.
카론, 아직 크리스마스는 한참 멀었다고?
카론의 흥을 깨지마, 벌레 양반.
카론이 크리스마스 같이 느꼈다면, 그런 거야.
벌… 아니, 기껏 카론이라고 불렀더니!
뭐, 그러면 그렉도 기사 양반이라고 부르던가~ 왜 당하고만 살고 그래?
크윽…
…….
기껏 사 와놓고 닭꼬치는 입에도 대지 않은 채 베르길리우스가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카론의 노래가 또다시 그를 고요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문득, 카론은 터널을 지나는 중이라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다른 수감자들과 한데 섞여 막막하게 웃고 있는 싱클레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긴 터널 속을 지나오고 있는 거라면…>
<아침을 기다리면 되는 게 아닐까?>
…….
아하하하! 뭐라는 거야, 단테?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자! 단테도 닭꼬치~ 아~
관리자께서는 입이 없다.
관리자님은 말 한마디 없이도 우리를 휘어잡을 놀라운 인재시니까 없는 것이다. 알아두도록.
아니… 그렇게 덮어놓고 딸랑거리면 안 지쳐요, 오티스?
야! …이거 더 없냐? 맛있네.
이봐, 벌. 양. 라이터 줘.
…줄여 말하면 내가 모를 것 같았어?
성공했지만 실패한 이번 작전에 대해, 조금은 달라진 나의 마음가짐을 수감자들에게 설파하려고도 했지만…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의 실패에 옭아매지 말라고 싱클레어에게 말했던 게 기억이 났으니까.
그저 다음 작전에서 만회해야지, 그렇게 마음먹을 뿐이었다.
저… 붉은, 아니. 베르길리우스 님.
왜.
본인은 주의받은 대로 행동했다고 생각하네만…
그러니… 저, 닭꼬치 하나 먹어도 되겠는가?
…그러던지.
시끌벅적한 버스는 돈키호테의 환호성과 함께 더욱 힘차게 달려갔고…
전하지 못한 말이, 그러나 어떻게든 전해졌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은 말이 우리들을 향해 퍼져나간다.
…아침은 그렇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