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내 벗이여, 떠나기로 결정했나?
나를 붙잡는 것이 아닌, 그저 할퀴기 위한 말들은…
아픔은 없었으나, 흔적은 남겼던 것 같소.
돌아갈 곳도 없으면서, 비틀거리는 그 몸뚱이로?
어디에 닿든, 그곳이 정말 집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부디 푹 놀고 있으시게.
황혼이 될 때 다시 돌아올 테니.
그렇게 나는 나의 마지막 벗으로 남아있던 구보마저 떠나 보냈소.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버린 것이지.
맞아, 이렇게 우리 모두가 혼자가 되었지.
그리고 나서야…
마침내.
내 차례가 온 거야.
… 이제 동랑 씨가 유리 기술을 K사에 건넬 차례예요.
잠깐이나마 구인회였던 저희는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어린아이 장난감 같다는 말은 좀 섭섭한데.
동물도 사람이랑 똑같이 아픔을 느낀다는 걸 너도 안다면, 그런 말은 함부로 못 할 걸.
동랑, 네가 도시의 모든 사람을 구할 작정이 아니면 어설픈 시도는 그만둬.
고작 이런 기술로 전부를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진작에 모든 걸 바쳤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바뀌겠니? 여전히 구리고 엉망일걸.
그러니까 다쳐도 괜찮은 거였어. 나 혼자 무언가를 치료하려 고생하거나 마음 아파할 필요도 없었던 거지. 정말 멍청했다, 그렇지?
그럼 고향 땅으로 돌아가서 너 혼자 혀라도 깨물고 죽었어야지!
그래, 동랑 씨는…
동랑?
아… 그러니까,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동랑 씨를 보고 울던 것…
누렁이 말이죠…
하하. 뭐 하는 거예요?
구인회는 흩어졌고 연극도 끝났어요. 당신은 더 이상 ‘유랑’이 아닌데.
그러게요, 너무 몰입을 한 나머지 잠깐이나마 당신의 ’벗’이라는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도 들었나 보죠.
당신은 바라던 것을 이뤘다고 말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아닌 것 같아서요.
누렁이를 살릴 때도 그런 마음이었나요?
함부로 말 하지 말아 줄래요? 제가 뭔가를 바라고 누렁이를 살린 건 아니었어요.
누가 모르냐? 밟혀 죽기 직전 걔가 우는 걸 보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그냥 살려준 거잖아. 우리가 번갈아 가면서 우유 먹이고 그랬는데.
그때는 대가 없이 무언가를 살려도 괜찮은 세상일 거라고 믿었는데.
아무래도, 그날 소각기에서 태워진 건… 고작 제 기술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네요.
내 마음속에 키우고 있던 텃밭이 그날 같이 불에 타 버렸어.
행적을 돌이켜 보니… 우리 모두가 많은 걸 잃고 있었소.
봐야 할 것을… 못 보고 만 채로.
미안하오. 비껴만 바라보아.
망가지고 있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고, 그대도 다를 게 없었다는 걸… 그땐 몰랐소.
…….
…누렁이는 어딘가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으려나?
그래, 돌아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못 알아볼 거… 같은데요…
옛날이랑은 너무 많이 달라졌잖아요.
네, 당신 말이 맞아요. 제 책장에 있는 최우수 상패들은 모두 껍데기들이에요.
화려하게 빛나고 있지만… 그 안엔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 내가 구인회가 아니었다면 얻을 수조차 없었을 껍데기.
그래서 난 사진이 좋았어요. 사진은… 정직하게 내가 담겨 있잖아요.
어느 날부터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무것도 안 보여. 거대한 그늘 속에 가려져 있는 것 같이…
동랑 씨… 누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이번엔… 내가 아닌 것 같네.>
나… 이제 알 것 같소.
저 자는 지금 뒤틀림을 향해 가고 있군…
네, 그리고 뒤틀리는 것은… 종착의 단계가 아니라 과정일 수도 있어요.
그럼… 저, 저희가 도와줄 방법은…
심상이 물리적으로 발현되는 이 공간에서 자신의 길을 이탈하지 않도록 막아서는 것.
그러면, 자연히 제 길임을 납득하는 순간이 오겠죠.
그게 도와주는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