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동랑의 사망으로 인해 모든 계약은 효력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는건, 우리가 황금가지를 건네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뭐, 결과적으로는… 나쁘진 않네요. 좋지도 않지만.
동백이라고 했나? 조직의 수장이 죽었으니 테러단체가 와해되는 건 순식간이겠어요. 그러면 이제 남은 문제들 말인데…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오늘, K사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은 동랑이라는 한 정신이상자이자 반사회적 성향을 지닌 직원이…
개인의 이득과 권력을 부당하게 취하기 위해 벌인 단독행동이에요. 맞죠?
…그걸로 되는 건가요? 저희한테는 적이었을지라도… 당신에게는 직원이었는데?
뭐… 작별 인사라면 아까 전화 통화로 했어. 깜찍한 놈이지.
림버스 컴퍼니의 관리자… 단테라고 했나? 관리자 치고는 질질 끌려다니는 것 같은데.
나중에 리더가 되고 싶다면 알아둬. 문제가 생기면 재빨리 싹부터 잘라내야 해.
빠를수록 좋지.
<엿이나 먹어.>
<시협회에 암살자를 의뢰해서 슈렌느의 입을 막은 것도 당신 짓이지?>
…알겠다고 하시네요.
…흥, 영 반푼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관리자는 관리자군.
아, 하나 더.
어쩌다가 우리 K사의 특이점까지 건드려 버릴 정도로 일이 복잡하게 꼬였는진 모르겠지만…
눈물 흘리는 것은…
외부로 절대 공개되어서는 안 되는 우리 K사의 특이점 그 자체이자 기밀정보였어.
림버스 컴퍼니는 탐색을 통해 얻는 기밀 정보들을 외부로 누설하지 않아요. 원한다면 관련 계약서를…
하.하. 방금 너희의 계약서가 백지로 돌아간 것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니?
그런 종이 쪼가리에 내가 저당이 잡힐 수는 없는 거야.
기억 소거 절차를 진행할게.
모.분. 내 기억에 손을 대면 남김없이 갈라주겠어.
…그렇게 하도록 하죠.
이 새끼…
뭐, 이왕 잊어버릴 거 정정해주자면…
당신들이 본 건 눈물 흘리는 것의 본체가 아니라 자식이야.
그 소중한 본체를… 근본도 없는 어느 연구자에게 맡길 수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도 우리 날개의 자부심인데, 그렇게 초라한 것이라 생각하면 좀 슬프거든.
…아, 어차피 생각하지도 못하겠지만.
료슈의 살벌한 으름장이 무색하게…
K사 고위 직원과 해결사들로도 보이는 자들의 거친 안내에 따라 우리에게 기억 소거 절차가 진행되었고, 눈물 흘리는 것에 대해 수감자들의 기억은 모두 말소되었다
앞으로 눈물이 어떻게 쓰일지 기대해달라는 알폰소의 마지막 말과 함께…
실험실 안에서 무언가를 보았지만, 정확히 그게 어떤 것이었고 무슨 방법을 통해 눈물이 채취되며, 어떻게 HP탄이 생산되는 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
<당신은 어디로 날아가고 싶었던 거야?>
그저 나는 기분을 느끼는 것으로 좋았소.
<그럼 지금은?>
…음. 노 코멘트 하겠소.
하지만 그들이 몰랐던 사실은…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내게는 기억 소거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혹시 내가 시계를 돌려 상처를 복구하는 것처럼, 어떻게 해서든 수감자들의 소거된 기억도 복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는 했지만…
아직은 방법도 모르겠고, 애초에 그럴 수 있을지조차도 모르겠다.
단지.
어떻게든 지우려 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귀중한 것일 테니까… 나는 조용히 있기로 했다.
하지만 관리자, 이 정도는 말하겠소.
이제는… 내게 남은 것들을 마주 볼까 하오.
남은 것이란, 구인회가 남긴 과오이자 내게 남은 업이요.
그러니 필요하다면, 할 수 있는 한 저항을 해볼 생각이오.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흔들리고 스러지지는 않으려 하오.
비껴보고, 스며들기보다는…
걷고자 하는 곳으로 걸으려 하기에.
도와줄 수 있겠소, 단테?
<…….>
<물론이지.>
그렇다. 기억을 도려내도 마음속에 뿌리 박힌 의지까지 좀 먹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의지는 무엇일까.
나는 어디까지 기억하고 지켜봐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난 맞은 편에 있는 베르길리우스를 쳐다보았다.
…이 모든 걸 기억하고 지켜보는 것도 관리자의 업 중 하나일 테니까 말입니다.
<내 말이 들린 건가?>
단테 씨가 자신의 말이 들렸냐고 물어보시네요.
…째깍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뭔가 말이라도 했던가.
들릴 리가 없죠, 관리자 단테. 그냥 실 없이 한 소리일 뿐입니다. 그런 표정 같아서 말이죠.
내게 표정이란 게 있었나…?
멈추지 않는 그 눈물의 원초적인 의미는 감격이길.
당신의 소원과 우리의 소원은…
언제나 그렇듯 최선을 다해 이뤄지고 있어요.
잘 지내시오?
거울을 볼 때마다 문득 인사를 하곤 하오.
인사란 서로 주고받아야 자연스러운 것이라 하지만…
언젠가 전해질 거로 생각하기에 괜찮소.
이제 나는, 정지하지 않을 테니 말이오.
모든 건 결국, 변하지 않겠지만…
나 역시도 이제, 변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들 하지 마시오. 내 곁에는 새로이 벗들이 생겼소.
그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들을 벗삼으려 하오.
그럼…
끝에 부쳐.
사는 내내 모두가 평안하시길.
이상.
<다들 먹는 것 하나만큼은 진심이네.>
<어떻게 회식만 하면 저렇게 기분들이 좋아 보이지?>
나는 잠시 바람을 쐬러 음식점을 나왔다.
……
<너는… 기척도 없었는데… 언제부터 거기 있던 거야?>
말했잖아. 다시 당신을 보러 올 거라고.
왜 사람은 그저 바라보는 걸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그냥 쳐다보며 향기를 맡고 그 순간을 즐기기만 해도 충분한데, 눈에 담으면서 욕망을 얻고 집착을 품으면서 스스로를 갉아 먹어.
거울이 처음 만들어진 것도 단지 즐기려고 한 거였잖아.
이를테면, 수백 가지의 맛이 들어 있는 과자 봉지랄까.
하지만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한 거지.
만약 저 무한할지 모를 과자 봉지 속에 손을 뻗어 내게는 없는 내 것을 가지고 오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해서 모두가 공평하게 모든 맛의 과자를 먹을 수 있다면…
그건 도둑질은 아닐 거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른다면 말이지.
그건, 나로부터 빼앗는 거니까.
<……>
하늘에도 수없이 많은 별이 떠 있어. 하지만 모든 별이 다 똑같지는 않아. 다른 누군가가 봤으면 그저 희미한 빛 덩어리에 불과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반짝이는 게 너무 아름다워 보였던 누군가 별을 가져온 다음에…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걸어 놓아서 어둠을 환하게 밝혔어.
사람들은 전부 기뻐하지.
자, 그러면 여기서 문제야.
나로부터 빼앗김을 당한 나와, 영원히 어둠을 밝혀야만 하게 된 별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당신의 친구들이 사용하는 거울도 다를 바 없이 그래. 그건 정말 잔인한 기술이야.
대답은 천천히 들려줘도 좋아. 그냥 나중에 양 한 마리 그려줘.
지금은 기억 못 하겠지만… 당신이 그려주기로 했거든.
내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그는 어떤 외로움만을 남긴 채 사라지고 없었다.
원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간 듯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서, 나는 내가 무엇을 대답하려고 했던 건지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