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럭… 쿨럭…
각혈. 긍정적인 신호다.
아무리 클리포트 억지력으로 훈련을 반복했다고 한들, E.G.O의 남용은 사용자의 신체를 한계까지 몰아세울 테죠.
황금가지는 이제 돌려줄래, 동백?
이쪽 손님들에게 넘겨주기로 뭐라더라, 엄청 복잡한 계약서에 도장도 여러 개 찍고 그래서… 무를 수가 없거든.
무지함이… 자랑이라고… 떠드네… 여전히…
그리고 너는 약하고. 여전히.
로보토미 사의 E.G.O를 사용한다고 해도 이건 내 기대 이하야, 동백.
그리고 아직… 내가 만든 기술은 소개해주지도 못했단 말이야. 그렇지, 오랜만인데 기술 낭송회라도 다시 할까?
오늘의 시청각 사료가 전송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말해줘. 동백…
너의 절망은 어디까지 커질 수 있어?
꺄아아아악!! 살려줘!!!
이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가 도로 한복판에서 환상체와 싸울때 드론이 찍었던 영상이…
네가 보냈던 협박 메일은 잘 받았어, 동백. 내가 특이점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환상체를 거리 한복판에 풀어놓을 거라고.
옛날부터 과격한 이벤트를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정말 실행시킬 줄은 몰랐네.
물론… 눈물은 더 많이 흘러넘쳤어. 덕분이야.
아냐… 정말 풀어놓을 생각은 아니었어. 기어코 탈출하고 만 거야. 네가 내 경고를 무시하고…
거기서 내가 반응을 한다면, 우리 연구실이 독단적으로 환상체 실험을 해왔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잖아.
때마침 우리 의뢰인들이 둥지 근처에 머물고 계시니까 망정이었지.
저희가 탈출한 환상체와 만날 거라는 것까지 당신의 계획이었다는 거예요?
계획이라기보단 실험이었어요.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지만, 당신들이라면 충분히 해낼 거라는 근거가 있었거든요.
전 생각보다 당신들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말했잖아요?
팬, 이라고.
아니지, 싱클레어! 항상 그랬지만… 쥐는 건 나야…!
이게 왜… 보고 싶지 않아요, 저 장면…
이때도 기록적인 눈물 수치를 기록했어요. 최우수상을 받는 데에 톡톡한 역할을 했달까요.
말을 섞기에는 그다지 우수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N사의 어느 부서 직원들 덕분에 신선한 시청각 사료를 얻을 수 있었죠.
그럼… K사 둥지 거주 구역에서 N사가 그런 잔인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도…
이것이 거래였군.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영지 형의 유리창은 혁신적이지만, 자유자재로 다루기에 너무나 방대하여 한낱 나같이 속된 이들은 함부로 만질 수도 없을 거라고.
…….
아, 동백. 너였나?
지금… 이게…
눈물은 흘려도 흘려도 항상 부족했단 말이지.
그도 그럴게, 주위를 둘러보면 이곳엔 괴로운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울어주는 거야.
눈을 감을 겨를도 없이.
유리창은… 이따위 역겨운 짓거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야…
중요한 순간이야. 험한 말은 삼가줘.
그리고 나도 알아. 영지 형이라면 분명 이런 나를 혼냈겠지.
아, 그런데 그거 알아? 지금은 장난감 같은 기술을 돌려보며 환호성이나 연발하던 시절이 아니더라고. 이젠 사람도 부족해서 박수 소리도 옛날처럼 안 클 거야.
…….
너는 그저 잊지 못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겉으로는 거창하게 기술의 추악함이니 뭐니 말해도…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나중에 갖다 붙인 명분이잖아. 네 목적을 이루려고.
기술의 추악함을 소멸시키려는 너도, 같이 추악해지고 있는 걸 보면 말이야.
하필이면 너희가 내 연구 장소였던 로보토미 지부를 가로채 간 것도…
부하들에게는 특이점을 조사할 목적이라고 했지만, 그곳에 E.G.O 처럼 무기로 쓸 수 있는 기술들이 숨겨져 있단 것까지 알아낸 거지?
그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준 건 누구였을까. 슈렌느도 몰랐을 텐데. 나랑 스무고개 하면 알려 줄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떠들지 마. 옛날부터 너 그러는 거… 정말 짜증 났어…
하하, 그럼 하나만 더 아는 척해볼게.
영지 형의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리고 이상의 거울에 비쳤던 세계를 엿보았을 때…
그때 우리는 결코 이전 상태로 돌이킬 수 없는 희열과 분열을 느꼈지.
…….
유리창이 탄생했을 때부터…
각종 이익 집단들이 앞다투어 몰려 들어왔어.
그래… 우리는 스스로의 발로 구인회를… 나간 거라고 생각하지만…
모두 알고 있잖아… 사실은 갈기갈기 찢겨져 흩뿌려진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그리고 그 원인이 우리 중에 있다는 것도…
동백, 네가 개념 소각기에 내 기술을 넣어버린다 하더라도, 순수했던 그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어. 알고 있지?
흐음… 알고 있는데도… 집착을 놓지 못하는 건…
…….
아, 그랬군.
소각되어 버린 기술들을 누군가 다시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다른 꿈을 가진 이름 모를 누군가들이… 같은 희열을 느껴 주기를 바랐던 거구나.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순 없으니…
다시 과거를 만들어서 물려주는 걸로 말이야.
와, 이거 진짜 신선하고 귀여운 발상이네, 동백.
도, 동백 씨… 몸이…
동백이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와 이야기라도 하듯.
그래… 모래 속에… 다시 꼭꼭… 감춰 놓는 거야…
언젠가 발견할… 누군가를 위해…
우리가… 남들보다 더 나은 자격이 있어서 그 기술을 발견 한 건 아니니까…
당신 말대로 난 나를 속이고 모두를 속이며 내가 원한 것을 밀어붙인 것이겠지… 그저… 우리가 팠던 땅이… 비옥했던 것뿐이니까…
서운하네. 정작 그 땅을 일구기 위해 꽃구경도 놓치고 괭이질만 했던 우리의 노력은 모르는 척하는 거야?
그때의 우리는 물정을 몰랐던 풋내기였고, 네가 잊지 못하고 있는 그 순간은 미화된 찰나에 지나지 않아.
그런데 목숨 바친 네 동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나?
그저 동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그럴듯해 보이는 대의를 외쳤을 뿐. 사실 허공에 떠 있는 뜬구름이었다는 걸.
아니… 하지만… 이제야 난 나를 제대로 알겠어. 그래서 직접 내 손으로 흙을 덮고 싹을 심어야만 하지 않겠니?
봉우리는 저물고… 우리의 열매는 이미 시든지 오래이니…
다시 흙을 덮어 허물고… 다른 열매가 맺히도록…
이봐… 저대로 놔둬도 괜찮은 거야?
알고 있잖아… E.G.O를 사용하면 정신이 멀쩡하게 굴러가지 못하는 거…
야… 너 일부러 그러는 거냐…? 되는 데까지 도발을 시킨 다음에…
결국엔 제풀에 스스로 꺾이도록…
…이번에는 우리가 없을, 순수했던 그 시절로.
아, 순수라…
순수라는 단어만큼 부끄러운 단어는 없지.
야, 정신 차려!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네 마음을 정신없이 흔들어 놓는 건 나 밖에 없지?
아니, 난 그 언제보다 정신이 활짝 피어나는 것 같아.
나는 언제나 곧 터지고 피어나올 봉우리이고 싶었어.
온몸 가득, 향내음을 두르며…
이것이 누군가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마음 아픈 나만의 길일지라도…
떨어진 꽃잎과도 같은 진하고 비옥할 다음을 남길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