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가 공명하는 장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흩날리고 있는 노란색의 무더기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공간이, 꽃잎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 너머에 이상 씨의 자아 심도가 있는 거군요…
<자, 들어가자.>
…….
와, 이곳을 다시 오게 될 줄 진짜 몰랐는데. 황금가지라는 것 때문인가? 아니면 네 덕분인 걸까, 이상?
그곳엔 동랑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
아늑하네… 여긴 어디였어, 이상 씨?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곳… 이오.
<…책상 위에는 종이들이 놓여져 있어.>
아하… 응, 보통 이런 건.
우리 같은 손님들을 보고 읽으라고 놓아두는 거지.
…….
이상이 말없이 다발을 집어 든다. 조용히 활자를 훑는 표정 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언젠가, 내가 썼던 편지… 그리고 형식은… 극본이구료.
그렇다면, 이는 연기자만큼의 수가 배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하면…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이었던 것이겠소.
이거 아무래도… 분위기상 우리가 낭독을 해야 할 것 같지?
어쩌면 동백이 올지도 모르겠어, 이상.
만약 동백이 죽기 직전에 이 공간… 하하,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
아무튼, 공간의 입구가 열렸다면 말이야… 동백의 의식이 같이 휘말렸을 수도 있겠네, 우리처럼.
…동백을 찌른 연유는 무엇이오?
생각보다 너무 미적거리더라고… 뭐, 이렇게 끝맺는 말이 필요한 거야?
…연유를, 말하시오.
아니… 너도 알았잖아, 이상. 그 상태의 동백은 죽음을 바로 맞이할… 그것도 고통스럽게 흐드러져 버릴 상태였다는 걸.
그러니 분노를 머금고서도 내게 뱉어내지 못하는 거잖아. 어차피 거기서 거기였으니.
이번 자아심도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려나 보군요.
자아심도는 누군가의 마음이 구현화 된 장소, 혹은 형상.
그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는 강력하고 복잡해서… 수감자 외, 이상 씨와 깊이 관련이 된 주위 사람까지 끌어당길 수 있죠.
…그래? 그러니까… 시덥잖은 이 연기를 할 광대 놈들이 여기까지 끌려왔다. 맞지?
추측일 뿐이지만… 네, 그럴 것 같네요. 각자의 역할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겠죠.
…못한다면?
자아심도에서 표출하려는 형상이 망가져서… 결과적으로는 황금가지로 도달하지 못하겠죠. 원본, 즉 이상 씨가 가지고 있는 실제 기억과 최대한 유사하게 흘러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좋아, 완벽하게 알아들었다고. 그러니까…
뭐야?!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내겐 돌연적으로, 혹은 우연적으로… 혹은 숙명적으로 함께하게 된 이들이 있었지.
그 말 멋있네.
…그러게 왜 문 앞에 얼간이처럼 서 있는 거니?
…뭐, 얼간이? 잠깐… 넌 아까 분명…
사람 얼굴을 그렇게 뚫어지게 봐, 죽은 사람 보는 것처럼? 왜, 새삼 멋있어 보이니?
마… 맞아요 갑룡, 촌뜨기같이 굴지 마요. 이름값이라도 하고 싶은 거예요?
…? 이 새끼가 지금 뭐… 뭐야?
(힉, 그게 아니라 히스클리프 씨, 대본이에요, 대본…! 제가 집은 종이에는 그렇게 쓰여 있단 말이에요.)
뭘 그렇게 자기들끼리 속닥거려.
그게 말이야, 동백. 갑룡이가 새삼스럽게 우리가 어떻게 여기 T사에 모이게 되었는지 회상을 하고 있어서.
괜히 거슬리네… 야, 그 이름 부르지 마라.
좋네요. 갑룡이도 항상 그렇게 말하곤 했거든요. 자기 본명으로 부르지 말라고.
…….
당신이 말할 순번이오, 상허.
크흠.
아… 그러니까…
우리의 고향. S사는 알다시피 많은 것이 망가지고 변하고 있는 격동의 상태였다.
허울 좋은 말만 늘어놓는 윗선의 몽상가들과 부패한 탐관오리들 때문에, 민생과 경제는 매일 같이 불안정하며 일그러졌고…
날개 간의 협약, 취직… 그 무엇 하나 보장해 주지 못한 채, 우리 같이 지식을 추구하고 공부하려 하던 연구원들은 간단한 나사못 하나를 구하는 것조차 벅찬 상황이었지.
그때, 영지 형이 우리를 불러 모았다.
아… 이상과 동백이는 제가 불렀잖아요. 같은 동네에서 자랐으니까요.
…그래, 영지 형과 동랑이 우리를 불러 모았다.
제가 말했어요.
T사라는 날개는 한창 눈부신 기술의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라, 기계와 기술의 발명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고.
그러니 부품들을 구하는 건 일도 아니며,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가 발명을 업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라고.
그래서 뜻이 맞는 자들끼리 함께 그 모든 위협을 무릅쓰고 맨몸으로 도망쳐 건너 온 거랍니다.
모두의 바람대로… 우리는 이곳에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지.
비록 그 속의 색은 반납해야 했기에, 보이는 눈부심은 없었지만.
뫼르소, 혹은 뫼르소의 입을 빌린 구인회 멤버 누군가의 말대로… 이곳에 색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창문 밖에 있는 꽃에도 빛깔을 잃은 채 탁하게 흔들리고 있었으니.
T사에서는 색깔을 가진다는 것이 일종의 특권이에요.
색을 빼앗는다고요?
색깔은 곧 정체성이니까요. 유일성을 빼앗으려면 그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겠죠. 그렇지 않나요?
맞아요.
…그리고 가진 것 없는 놈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무언가였기라도 하지.
…….
야 아능, 계속 떠들고만 있을 거니?
오늘은 낭술회 잖아. 잘 봐, 내가 기깔 난 놀이를 만들어왔으니까.
보렴. 이전보다 잘 터지지 않니?
대체 왜 옛날부터 폭발… 이 아니라. 폭죽에 집착했던 거예요, 동백 씨…
여기서는 밤에도 대낮같이 환한 조명들이랑 증기 연기 때문에 별이 안 보이잖아. 고향에서는 별이 진짜 예뻐서 다 같이 하늘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심지어 색마저 없지. 우리가 있던 곳에서는 그나마 꽃의 색이라도 볼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렇게라도 보고 싶어.
이것 봐. 비록 색이 없어도 보이잖아?
불꽃은 참 따뜻한 색깔이라는 거.
부끄럽네. 나는 이렇다 할 기술이 아직 없어.
그걸 그렇게 해맑게 말할 일이니?
하하, 길거리에 다친 동물들을 치료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더라고.
고향에 두고 온 누렁이가 생각나서 발걸음을 못 떼겠는 거 있지.
뭐, 지금쯤이면… 새끼를 뱄으려나?
음 아마 아닐걸. 수송아지였거든.
…….
아… 으어이아…
<…!>
에휴… 또 시작이네.
갑룡, 네 외상값 받으려고 술집 주인이 또 찾아온 것 같은데. 얼른 나가 보지 그래?
뭐야, 저 새끼들… 왜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황금가지와 이상 씨의 강한 공명으로 인해, K사 연구소 전체가 가지의 영향을 받고 있어요.
덕분에 저들도 같이 휘말렸지만, 이상 씨와는 아무 고리가 없죠.
아무런 역할도 부여받지 못한 자들이기에… 이곳을 훼손하려 할 거예요. 자아심도가 불안정할수록, 더 심해지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빨리 이곳의 이야기를 진행해야 된다는 거군요.
누구처럼 꾸물대면서 종이에 적힌 대본대로 안 읽고 얼빵하게 헛짓거리를 할수록 더 많은 적에게 노려진다는 거잖아요.
이스마엘이 뚜둑 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니 일단은 눈앞의 적들에게 집중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