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끊임없이 울고 있다. 굶주림을 읊는 소리인가? 아니면…
움찔 움찔거려. 일어난 걸까?
드디어 정신을 차렸군. 버티지 못하고 골로 갔으면 조금 실망할 뻔했어.
상쾌한 아침. 나는야 버스 기사. 카론.
아침은 아니지만 상쾌하긴 하겠어. 기분이 어떻습니까? 단테.
<나는…>
째깍거리는군… 하아,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건 제법 곤란한데.
저는 베르길리우스라고 합니다… 이 말이 제대로 들린다면 무언가 이해했다는 행동이라도 취하시죠, 단테.
고개를 끄덕였다. 적대적으론 보이지 않았기에.
좋아. 듣는 것엔 문제가 없군. 일단 출발하지, 카론.
출발할게. 부릉부릉.
깊은 수렁 속에서 끌어올린 듯한 둔중한 구동음과 진동.
그제야 이곳이 버스 안이라는 걸 알았다.
버스… 라는 것을 내가 과거에 이용했던 적이 있었는지는 가물 하지만.
당신이 누구였는지는 기억합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머리통이 철컥거리는 무언가가 되어있다는 걸 다시금 알아차린 참이었으니.
원래 기억을 되찾고 싶겠군. 그렇지 않나?
끄덕였다. 바보가 된 기분이다.
매끄럽군. 다들 이렇게 몸짓으로만 말하면 안 되는 건가?
어떻게 생각하지? 파우스트 씨.
파우스트는 사양하고 싶어요.
저희가 매끄럽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요.
아까 내게 말을 걸었던 자다.
햇빛을 받지 않았음에도 머리칼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사뭇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단테.
<단테?>
그러고 보니, 저 빨간 눈을 한 자도 계속 나를 단테라고 불렀지.
단테는 당신의 이름이에요. 이름까지 잊으셨군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그다지 익숙한 단어도 아니야.>
점차 익숙해질 거랍니다.
<잠깐… 당신은 내 말을 들을 수 있나?>
<아까 나를 공격했던 놈이나, 저 베르길… 이라는 작자나 전부 시계 소리밖에 못 듣는다는 어투였는데.>
파우스트에게는 제대로 된 단어로 들린답니다.
<정말이잖아…? 어떻게 된 일이지? 내겐 제대로 된 입도 없는데.>
그런 구시대적인 발상은 머리를 바꾸어서 생긴 건가요.
성대나 혀 따위의 발성기관이 있어야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이야기죠.
<시대… 그렇군.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당신의 말은 한 사람에게만 보낼 수도 있고, 모두에게 전달할 수도 있답니다.
아, 모두라는 말은 수정해야겠군요. 수감자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예요.
<수감자?>
당신의 뒤에 앉아 있는…
방금까지 당신을 대신해서 싸운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오오오!!! 그대가 이 여정을 함께할 마지막 조각인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네!
형씨, 머리통은 어디다가 팔아넘겼어?
당신이었군요, 당신 덕에 박살 나 있던 척추가 말끔하게 돌아왔어요. 혹시 둥지에서 의사 일이라도 했나요?
다들 닥쳐라. 잡음이 겹치는 것만큼 불쾌한 것도 없으니.
자기소개가 필요한 시점인가 보군.
그럼 가벼운 인사를 나눌 시간을 주겠다. 앞에 앉은 것부터. 시작.
왜 이런 건 항상 앞자리부터인지… 앞에 나서는 건 이제 진절머리가 나는데.
당신이 우리를 이끌… 뭐더라, 관리자라고 하던데.
<관리자?>
그래, 그래서 어떤 인물인지 굉장히 궁금했는데 말이야…
어… 음, 쯧. 역시 뭔가 말을 만드는 건 어려워.
머리통은 어디 팔아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마다 사정은 있는 법이니까.
나는 그레고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고, 관리자 양반.
그렉! 양반이 뭐야, 양반이~ 이제부터 우리한테 엄청난 돈을 가져다줄 사람한테!
그렉…?
<돈?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양반보다는… 단테! 이름으로 부를게. 당신도 나를 로쟈라고 불러~
난 당신이 우리의… 음, 관리자가 된 데에 이유가 있다고 믿어.
분명, 원래는 둥지의 굉장한 사람이었겠지? 그때 버릇을 조금만 내비쳐도 우리한테 돈이 주르륵 들어올 생각을 하니… 후후….
…붙임성 하나는 대단한 것 같다.
아차, 내 정신 좀 봐. 얘! 다음은 네 차례야!
안녕하세요…
시시해~ 그게 끝이야?
아! 싱클레어라고 해요…
불안정해 보이는 이 소년은 자신의 발로 이곳에 들어온 건 맞기나 한 걸까?
…더, 더 해야 할 말이 있나요? 회사는 처음이라…
뭐, 앞으로 남은 날은 많을 테니까.
그럼 거기 괴짜 친구가 다음 타자하자!
이상이라 하오.
<…끝이야?>
음. 이상이오.
장난을 칠 셈으로 그런 걸까 유심히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그러한 것에 관심이 없는 듯 텅 빈 눈으로 차창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 답답하네요. 사회생활의 첫걸음은 인사잖아요?
저를, 이스마엘이라고 불러주세요.
당신 덕택에 동강 난 몸이 돌아왔다고 들었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그녀는 깍듯하게 고개를 꾸벅이고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사회생활이라는 말을 한 것치고는 그다지 붙임성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미안하게 됐네, 나는 사회생활하고는 거리가 좀 멀어서.
히스클리프. 뭐 때려 부수고 깨부수는 일은 전문으로 하고 다녔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거슬리는 것들에게 하고 다니긴 했지만.
당신도 조심하라고.
나는 윗사람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사람한테 알레르기가 있거든.
아직 내가 뭘 잘못한 것 같지도 않은데.
드디어 이 몸의 차례인가! 난 돈키호테일세!
그대와 함께 꿈을 향해 달려갈 해결사지. 잘 부탁하네.
<해결사…? 분명히 알고 있었던 단어 같은데…>
해결사 말인가?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네! 도시를 수호하는 자들이지!
아! 도시에 대해서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겠군! 도시는…
나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라고 했던 것 같은데.
윽…
두 번 말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음.
홍루라고 한답니다. 잘해보자고요, 우리.
우와~ 당신, 그 머리 근사한데요? 요새 유행하는 모델인가 보죠?
<이건 그런 게…>
제 취향은 아니지만.
…저건 무슨 말 싸가지야?
히스클리프라는 자는 당장에라도 손에 쥔 방망이를 휘두를 기세였지만…
붉은 눈빛이 그를 쫓는다는 걸 깨닫고, 앓는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 앉았다.
료슈.
요료슈쿠.
…푸훗.
어느 시점에서 웃어야 했던 걸까?
뫼르소, 그렇게 불러 주시겠습니까.
<당신은 깍듯하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보통의 태도입니다.
<살짝 감격스러울 정도네. 고마워.>
네.
뭔가 중요한 나사가 한두 가지 빠진 것만 같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판단이 되지 않는 자다.
…….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보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주눅이 들 뻔했다.
저는…
다가온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허리를 굽힐 뻔했지만, 그녀는 제지하듯 손을 뻗었다.
관리자님이 먼저 자세를 굽히려 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본인은 오티스라고 합니다. 이전에 실례했던 부분을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실례… 라니?>
하하, 이것 참. 마음마저 이렇게 넓으실 줄이야.
역시, 처음부터 저희를 이끄실 분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으응? 응?>
인간의 대부분은 서로가 맞붙어 소음과 마찰을 이끌어내지만…
그중 소수는 맞붙는 것으로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검을 날카롭게 벼리기 위해선 그만큼 강한 숫돌이 필요한 것처럼.
누구보다 관리자님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편히 써주시기를.
<드, 듬직하네… 고마워.>
여전히 뭘 실례했다는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숲에서는 불쌍하게 나뒹군다고 말하더니, 잘도 그런 말을 성대 밖으로 꺼낼 수 있네요.
…알 것도 같다.
제가 마지막이네요. 파우스트입니다.
당신의 인생 중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천재죠.
<으음…>
납득하지 못한 듯한 반응이군요, 단테.
괜찮습니다. 경험을 통해 차차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무얼…?>
파우스트가 진귀한 천재였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관측자가 깨닫지 못한다 하여, 사실이 진실이 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그래…>
소개는 여기까지.
단테, 당신의 직무를 알려 드리죠.
<직무… 관리자를 말하는 거야?>
관리자를 말하는 거냐고 묻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수감자들과는 다르게 저 붉은 눈빛을 한 사람은 내 목소리를 못 들었었지.
맞습니다. 관리자 단테. 당신은 지금 소개받은 이 열둘의 수감자와 함께 지옥을 기행 하게 될 것입니다.
<지옥…? 내가 왜 지옥으로 가야 하지?>
자신이 지옥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묻네요.
흠… 지옥의 끝에는 보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되겠습니까.
<무슨… 원래 내가 보물 사냥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뜻이야?>
아예 알아듣질 못하는군요.
이해를 요구한 건 아닙니다, 단테. 의사를 물은 것도 아니죠.
기억과 머리를 되찾고 싶다면 제 말을 들어야 할 겁니다.
<그거야… 되찾고 싶지만…>
미적거리네요.
파우스트 씨. 단테가 계속해서 거부하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거부할 거란 예상은 없었잖아.
무슨 말씀을. 파우스트는 모든 것을 예상한답니다.
단테, 모든 임무를 마치고 나면…
당신은 성위를 새길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보증하죠.
성위. 머리를 관통하는 단어다. 없어진 기억 밑에 남아있는 직감이 반응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직감이 선택한 결정은…
보이죠? 고개를 끄덕이잖아요.
좋아. 계속 가면 되겠어.
그런데 카론, 아까부터 왜 출발을 안 하고 있지? 졸았나?
버스 기사는 졸음 쉼터에서만 졸아, 베르.
메피 앞에 이상한 놈들이 서성이고 있었어.
카론, 말했잖아. 버스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알려야 한다니까.
<메피? 메피는 누구지?>
메피스토펠레스. 이 버스의 이름이자 버스를 구동하는 엔진의 이름.
…그리고 파우스트의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죠.
지옥을 순항하기에는 걸맞는 나룻배가 아닐 수 없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단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와 닿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버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아하니, 뒷골목에 기거하는 익숙한 쥐새끼들이군.
마침 잘 됐습니다, 단테. 지휘를 연습하기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군요.
단테, 처음 전투에서는 생략한 부분이 많았어요.
제대로 설명할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만 전투가 이뤄지면 우리는 항상 도륙 날 거고.
당신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의미 없는 고통을 느껴야만 하겠죠.
<고통… 살려? 그럼 아까 그게…>
네, 당신이 ‘시계를 돌려’주었기에, 우리는 살아나는 거랍니다.
당장 필요한 설명은 아닌 듯합니다, 파우스트 씨.
자잘한 담소는 나중에. 너희들. 전원 하차.
…전투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