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부터는 패잔병들이 머물렀던 흔적조차 보이지 않네요.
더 이상 전진은 하지 말라고도 경고하던데…
죽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시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우리… 아니, L사 직원들의 시체에요…
둔기로 맞은 흔적이오. 전원이 그러하구료.
관리기록서… 이건 환상체 관리법을 적어두는 문서에요.
보통 관리 업무를 지정 받으면 지겨울 정도로 암기를 해서 들어가니까… 이런 건 필요 없는데.
추측건대, 환상체가 탈출했고 아무도 관리법을 알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하오만…
…흐응.
아직 격리실로 운반하지 않은 알들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시체가 너무 많은데.>
대체 어떤 환상체길래 이렇게 많은 수의 직원들이…
잠깐… 이게 무슨 냄새죠?
…이번에 사무실에서 비싼 장비를 하나 장만했지요.
얜 또 뭐라는 거냐?
특정 층부터는 독성 검출이 높아진다고,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나, 아까부터 귀에서 피가 흐르는데~ 이거 괜찮은 거야?
고난 없이 어찌 전투를… 으헥, 꾸엑! 쿨럭!
지속 노출되면 신체에서 지속적으로 출혈을 일으킨다더군요.
으… 정작 그렇게 말하는 본인은 너무 멀쩡한데?
이거… 예전에 보급되었던 환상체 제압용 독성가스탄이네요.
시체들 사이에서… 쿨럭… 폭발이라도 했나 봐요…
확실히 이 부근부터는 독기가 꽤 진해지는군요.
그렇게 말하는 홉킨스는 어느새 얼굴에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뭐야, 우린 저런 거 없어?
제공되는 보급품은 따로 없었습니다.
이 새끼, 넌 일찌감치 알고 있었냐? 버러지 같은 자식이… 큭…
히스클리프가 말을 멈추고 자리에 주저앉는다.
흥분하면 혈류가 더 빨라집니다. 독이 금방 퍼진다는 거죠.
자리에서 되도록 날뛰지 말고 최대한 천천히 호흡하세요.
홉킨스 씨… 왜… 쿨럭, 미리 말을 해주시지 않으셨어요?
나야말로 물어보자, 유리.
별 기대도 안 하고 들여놓은 짐짝 같은 사람한테, 가뜩이나 비싼 물건을 축낼 만한 사실을 왜 알려야 하지?
…….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 사무실에 네가 발을 들인 것도 놀라운 거야.
아야는 널 귀엽게 봐서 챙겨주려고 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죽었는데 무슨 상관이야.
비겁한 새끼… 그러고 살고 싶냐…
해결사에게 비겁이라니, 되도 않는 말을 하네.
붉은시선님이 데리고 다니는 이들이길래 누군지나 보려고 했더니…
제대로 된 도구나 정보도 없이 여길 기어들어 오는 미친놈들이었을 줄이야.
저딴 새끼를… 그냥 두고만 봐야 한다니…
홉킨스 역시 살의를 느꼈는지 재빨리 입구 쪽을 향해 뒷걸음질을 쳤다.
그래도 덕분에 엔케팔린은 쏠쏠하게 얻어갈 수 있었어.
창피할 테니까, 질식사 말고 행방불명이라고 보고해줄게.
그럼.
…….
유리는 주저앉은 채로 쏟아지는 코피를 손으로 받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로쟈나 히스클리프, 그 외의 다른 수감자들도 저마다 괴로워하며 피를 쏟는다.
<그레고르?>
쩝, 유품이나 챙겨주려고 들고 왔던 건데…
죄…
근데, 하아… 그러면 뭐 어떠냐…
계속 뻔뻔하게 살아남아야지.
쿨럭, 일일이 죄책감 부여하다간… 네 마음이 남아나지 않아…
…….
마침내 그레고르의 숨까지 멎었고, 방독면을 쓴 유리와 나만이 그 공간에 유일하게 서 있게 되었다.
<어… 너, 너무 걱정하지 마. 아까 거기로 가서 되살리면 되니까.>
유리에게는 째깍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전달하려고 했다.
…알아요.
유리는 그 말을 끝으로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어색하고 음울한 시간이 한참 지났고, 마침내 독이 전부 흩어져 사라졌다.
…이제 괜찮은 것 같네요.
<으응? 응, 그래.>
도울게요, 가서 빨리 살리고 오죠.
그렇게 말한 유리는 방독면을 벗고, 담담한 표정으로 쓰러진 수감자들을 하나씩 둘러멨다.
그 표정에 어떠한 말을 붙일지 몰라서, 나는 잠자코 있기로 마음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