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번 작전은요, 저희가 숟가락으로 떠먹여 줄 테니까 그냥 입을 벌려서 골고루 씹기만 하면 된답니다.
여기 봉투에 든 문서들 확인하시고, 거기에 적혀 있는 대로, 고~대로만 하면 돼요.
‘고~대로’라는 부분에서 고~를 쓸데없이 길게 늘어뜨린다고 생각해서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
말해봐야 째깍거리는 소리 말고는 들리지도 않을 테고.
뭐야, 말로는 공조라면서 함께할 생각은 전혀 없고 그냥 뒤꽁무니나 쫓아오라는 소리군.
자존심 상하네. 이것들이 누구를 모지리로 알아?
이스마엘의 말에 마음이 동해, 그들이 내민 봉투를 뜯어 작전이 명시된 문서를 찬찬히 읽었다.
요약을 하자면 이번 작전은 다음과 같았다.
‘카지노의 꼭대기 층 도달 작전’
작전의 계기가 되었던 것은 오늘 이루어진다는 갬블 대회의 우승 상품.
카지노의 꼭대기 층에서 이루어진다는 대회의 승자가 되어야만, 황금가지가 있는 곳까지의 길이 열린다는 듯하다.
이 갬블에 참여하는 이들은 카지노를 공동입찰 했던 네 개의 조직인데…
우린 그 중… 악명 높은 조직 중 하나인 콩…
<콩콩이파?>
이름이 조직의 성격까지 대변해주진 않아요. 얕은 편견일 뿐이죠.
편견이라는 색깔 안경을 구태여 끼우는 것은 이상적이지 아니하오.
<…그래.>
…아무튼, ‘콩콩이파’의 두목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도박게임에서 승자가 된 후.
우리는 황금가지가 있는 지하로 내려가야만 한다.
그전까지는 전당포에 있는 물건들을 사용해 위장을 해 카지노에 잠입, 각각 부여받은 신분에 따라 VIP 이용객이나 딜러로 변장하여, 꼭대기 층의 성공 소식을 기다린다.
계획의 얼개는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잠깐. 이거 꼭대기 층에서 지면 전부 물거품이 되는 계획 아닌가?
혹시나 할 때를 대비해서 위조 신분증까지 준비해 놨답니다. 카지노에서 불시에 신분 검사를 할 수도 있으니까.
좋아, 다 좋은데… 꼭대기 층의 갬블에서는 어떻게 이길 작정이야?
우리 복장을 보면 감이 잡히지 않아?
카지노 딜러로 자연스럽게 섞이기 위해 몇 개월을 연습했지.
알아서 좋은 패를 넘겨줄 거야. 눈만 멀쩡히 달려있으면 이기는 건 걱정할 필요도 없지.
에피라는 자는 눈만 멀쩡히 달려있으면… 이라고 다시 중얼거리며, 이쪽을 묘하게 흘긋댔다.
어지간히 신뢰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풍기는군.
콩콩이파 두목으로는 어떻게 위장할 건데?
카지노에서 제공되는 식사에 수면제를 섞을 거예요. 주방장이랑도 이미 얘기가 끝났답니다.
수면제…
소드와 에피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찡긋거린다.
눈만 마주쳐도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는 최적의 콤비라는 걸 명백히 알 수 있는 몸짓이었다.
사장님~ 진열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물건들 좀 보고 있을게요~
네? 아! 아이고, 예. 그러믄요. 찬찬히 둘러보세요.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전당포 주인은 허리가 땅바닥을 파고들기 직전까지 굽신거리고 있었다.
그럼 다들 진열장에서 알맞은 물건을 가져가죠.
와! 이거, 구프샤 디자이너가 제작했던 브로치죠?
햐~ 이걸 알아보시는 분이 계실 줄이야. 저희 전당포의 대들보 입죠. 10개밖에 제작이 안 되어서 아마 부르는 게 값…
저희 집 강아지가 산책할 때마다 끼고 다니는 목줄 장식이었어요. 다시 보니까 너무 반갑네요!
…….
나는 이 소가죽으로 만든 장갑이 탐나는데. 이걸 샀던 녀석은 아마 패션센스가 남달랐을 것 같아~
봉투에 적혀 있는 대로 가져가세요.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답니다.
이보시오, 내 봉투에는 청소부라고 써져 있는데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소만!
좋아, 다 좋은데… 돈은 어떻게 지불할 작정이야?
격 떨어지게 예산 걱정을 왜 하는 거야? 이 ‘블랙카드’로는 못 긁는 게 없어.
단테! 어떻게 된 거야? 투쁠 고기는 예산 딸려서 못 먹는다며!
수준 이상의 성과를 보이는 부서에겐 회사에서 한도 없는 카드를 준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모두가 블랙 카드의 존재로 격분을 금치 못하고 있는 동안…
밖에서부터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할배! 오늘까지 자릿세 내야 한다는 거, 나만 아는 사실이었어?
한눈에 봐도 포악한 조직에 몸을 담고 있을 것 같은 자가 전당포 안으로 들어왔다.
하… 한 번만 봐주십시오. 다음에는 꼭 납부하겠습니다.
한 번? 할배, 덧셈도 못 해? 지난번에도 똑같이 말했잖아! 내가 노친네 숫자 공부 봐주느라 형님한테 깨져야겠어?
저, 저같이 힘없고 몸도 성치 않은 노인네한테 뽑아 먹을 게 뭣이 있다고…!
전당포 주인이 과하게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이쪽을 쳐다보았다.
에? 이제는 큰소리를 치네? 어~ 화내봐, 화내! 그래야 나도 죄책감이란 게 줄어들 것 같으니까!
도와주지 않고 뭐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던 것도 같다.
수감자들도 자연스럽게 소란이 난 쪽을 쳐다보고 있다.
거기 뭘 봐? 구경났냐?!
와… 진짜 전형적인 대사라서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좀 더 창의적인 시비를 걸 순 없는 걸까요?
저희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코웃음을 치는 이스마엘과는 달리 싱클레어는 불안한 듯 그쪽을 연신 흘긋거렸다.
어쩔 수 없답니다. 뒷골목은 뒷골목 나름대로의 규율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얼기설기 엮여서 돌아가는 구조니까요.
우리 같은 외지인들이 어설프게 개입을 하면 눈에만 띌 뿐이에요.
수감자들이 외면을 택한 것에 만족한 불한당은 제 본업을 마저 이어 나갔다.
흥, 돈이 없으면 그거를 내놓으면 되잖아?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 그것만은 안 됩니다… 제발…
<…정말 저대로 내버려 두어도 괜찮은 걸까?>
영 보기 그러시면 제가 나설까요, 관리자님?
그런데, ‘그거’라는 게 뭐지?
…이곳엔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재화가 존재해요.
J사의 특이점은 무엇이든 잠글 수 있는 강력한 보안 기술이죠.
하지만 그런 보안 기술이 생겨난 데에는 J사 뒷골목의 오래된 문화와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여, 역사…? 너 지금, 그걸 여기서 설명하겠다는 말이냐…? 난 입사 조건에 공부까지 있는 줄 몰랐다고!
강한 반발에도 파우스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이곳에선 사람들의 ‘소망력’을 추출해낼 수 있는 기술이 사용되고 있어요.
특이점으로 승인되기에는 보편성이 다소 떨어져서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일종의 ‘운’을 사고파는 거예요. 화폐처럼.
이 소망력을 무력으로 추출 당하지 않기 위해 어느덧 이를 방어하는 보안 기술까지 생겨나고 만 거죠. 그게 지금의 특이점으로 이어진 거고요.
이야~ 파우스트, 이놈들한테 눈높이 교육 시키느라 고생이 많겠다.
염두에 두고 있었던 일이라 괜찮아요.
그 말투, 무진장 거슬리는데…
자자, 그럼 우린 진열대에 있는 적당한 물건들을 각자 집은 다음에 여길 벗어나자고요.
소드라는 자가 계획이 빽빽하게 적힌 종이를 펄럭거리며 바쁘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린 일개 회사원이지, 정의를 위해 나서는 ‘히어로’가 아니잖아요.
<잠깐만… 그 단어는…!>
머리를 스치고 간 불길한 예감에 수감자들의 인원을 서둘러 체크해보았다.
<누군가의 가치관과는… 크게… 동떨어지는… 발언인데…>
누군가의 가치관을… 크게 자극하는 발언이기도 하고…!
…!
이스마엘이 내 말을 알아차렸다는 듯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의 귀중품을 함부로 약탈하려 하다니! 필시, 악인의 행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안돼…! 돈키호테…!>
하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돈키호테는 총알처럼 튀어 나가 전당포 주인의 멱살을 잡고 있는 콩콩이파 조직원을 향해 망설임 없이 랜스를 휘두르고 있었다.
깡!
기습당할 걸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지 랜스의 무딘 옆면은 그놈의 머리통을 정확히 가격했고,
유쾌한 타격음과 함께 맥아리 없이 바닥으로 쓰러진 조직원을 모두가 한참 바라보았다.
…….
아, 참고로 수감자들을 통제하는 역할은 제게 주어진 업무에 포함되지 않았어요. 이쪽 분의 역할이죠.
<그렇게 쳐다봐도 소용없어. 내 선에서 저 녀석의 통제는 불가능하단 말이야…>
내 말이 수감자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아도 자기변호는 멈출 수 없었다.
하기야. 내 항변이 설사 들렸어도, 기막히다는 듯 쳐다보는 그들의 표정은 딱히 바뀌지 않았겠지만.
오오오…!
유일하게 이 상황을 기뻐하는 건 전당포 주인뿐이었다.
아이고, 그 놈 꼴 좋네요. 하지만 살짝 더 세게 내려쳤어도 좋았을 법했습니다.
베르길리우스가 ‘악인을 처단하는 건 상관없지만, 작전 외 인물들까지 끌어들이면 곤란해질 거다’ 라고 해서 말이오! 힘 조절을 했다네!
혼자 뿌듯해하는 그 표정, 여간 얄밉지 않을 수 없다.
<아하, 그 말을 기억했는데도 튀어 나간 거야?>
신념을 지켜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네, 부디 이해해주게나!
그런데… 이놈, 설마 죽은 건 아니겠죠?
영감, 방금 전까지는 아쉬워하지 않았어?
그건 그렇지만… 이러다 '유로지비' 가 나서면 여러모로 복잡해지잖습니까.
'유로지비?' 걔네가 왜 여기에… 아니, 그보다 걔네 걱정을 왜 하는 거야?
아이고, 소식도 늦는구만요. 벌써 몇 개월 전부터 이 근처에서 깽판을 치고 있는데.
그들도 악당인가?!
어유, 저희한테는 악당이죠. 뭐라 그랬더라, 돈을 꽁치고 있는 장사치들을 조져서 힘든 사람에게 나눠야 한댔나. 뭐의 분배라 하던데…
부의 재분배.
아아~ 맞아요, 그거. 에휴, 우리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심지어 자기들이 와서 그러는 것도 아녀요. 매번 이 지역 깡패들을 시켜서 그러고 다닌다니까요?
하여간 지들이 옳은 일 한답시고 기세등등하게 다녀서 힘들어요. 처음에는 뭘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돈이나 뺏고…
…아! 그, 근데 말이야. 우리 피해야 하지 않을까? 콩콩이 파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르는데.
로쟈가 황급히 주인의 말을 끊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았지만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 말과 동시에 돈키호테가 쓰러뜨린 조직원이 조금씩 움찔거리는 것이, 곧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것만 같았다.
하아, 골치 아프게… 쓸데없이 일만 벌려서는.
이봐, 머핀과 소보루랬나? 너무 표정 구기지 말라고. 널려 있는 게 전당포잖아? 얼마든지 대체를…
에피랑 소드에요. 사람 이름을 맛있게 만들어 주시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널려 있는 게 전당포라는 뜻은 다시 말해…
이 소동을 눈치챈 모든 전당포가 곧 문을 닫을 거라는 소리랍니다…
<돈키호테…!>
바보들한테 일일이 설명하기도 이제 지친다. 얼른 나가자.
막 나가려는 순간, 우리가 쓰러뜨렸던 인물과 비슷한 계열의 복장을 입은 (그리고 똑같이 험상궂은) 인물이 가게 안으로 들이닥쳤다.
어이 영감, 우리 막내 보지 못했…
비실아!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우리는 전당포에 우연히 들어온 선량한 손님처럼 보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타이밍 좋게도 쓰러진 조직원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어떤 새끼야! 어서 말해! 내가 아주 사지를 찢어 줄랑게!
윽… 저… 저기…
빨간… 시계 대가리…
발뺌을 하기에는 그 손가락이 정확히 이쪽 좌표를 지목하고 있었고,
‘빨간 시계 대가리’는 아마 이 구역을 전부 뒤져도 나밖에는 없었을 것이 분명했기에 부정은 무의미했다.
노파심에 덧붙이지만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이제 막 얼음찜질을 해드리려고 수건을 가지고 가려던 참이었습죠.
저 노인네가 진짜…
기대도 안 했지만, 줏대라고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만도 못하네요.
전당포 주인의 태세 전환과 시계 비하 발언(심지어 내 탓도 아닌 일에)에 살짝 가슴이 아팠지만 의연해지기로 했다.
야… 거기 작것들… 스톱. 동작 그만.
왜냐하면 지금 당장 튀어야 할 상황이라는 게 명백했기 때문이다.
별것도 아닌 것에 마음을 쓰다 간 곤죽이 되어버릴 테니까.
하. 뭘 도망쳐. 귀찮은데 그냥 다 죽이자.
왜, 아주 콩콩이파를 뿌리째 뽑아내자고 하지?
훗. 그것도 나쁘지 않겠어.
악의 무리는 단숨에 뿌리를 뽑아야 정의가 바로 서는 법!
저기, 너희 중엔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는 직원이 정말 없는 거야?
이스마엘은 그 말이 모욕으로 들렸던 듯 반박을 하고 싶어 하는 낌새였지만, 그보다 콩콩이파 일당들이 품에서 무기를 꺼내고 있는 것이 더 눈에 들어왔다.
<일단…>
<일단 밖으로 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