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금방 빠지네요. 10분 정도만 기다리면 저희 차례가 오겠어요.
통과 질문은 저희 13명이 다 해야 하나요? 단테 씨는 말을 못 알아들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하죠?
이스마엘은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고 질문이 늘어나는 버릇이 있는 듯했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지.
잘 들어. K사의 직원은 이쪽 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간단한 질문만 할 거다.
그리고 너희들 또한 매우 간단한 대답만 하면 되는 거야.
심문소 직원이 어떤 목적으로 왔냐고 물어보면…
‘림버스 컴퍼니 업무상으로 왔습니다, 업무 비자를 확인해주세요.’
라고 대답을 하면 된다. 토씨 하나 빼먹지 말고 그대로 외워.
그 밖에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만 증명하면 돼.
혹시나 저 말을 외우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으세요.
그저 갖고 계시는 사원증을 내밀기만 해도 되니까요.
<입 다물고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제일 쉬운 일이지.>
눈치를 보며 슬쩍 비꼬았다.
파우스트가 행여나 일러바치진 않을까 내심 걱정을 했지만…
베르길리우스는 다행히 허공만 바라보고 있을 뿐 별말은 하지 않았다.
자, 그럼.
질문이 있는 사람은, 내가 정말 가치 있는 질문을 생각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본 후에.
조용히 손을 들도록.
나를 포함해서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로지온.
업무 목적이니까 무기는 들고 들어가도 되지~?
그렇다. 다음.
그럼, 그렉의 기기괴괴한 팔이나 단테의 근사한 시계 머리도 상관없겠네?
맞아요. 참고로 관리자님의 머리는 무기가 아니라 의체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관광 비자여도 허용은 돼요. 비록 불사의 능력을 지니고 있더라도요.
모범생 역할을 자처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은 이스마엘이 대신 대답했다.
요전번 카지노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스마엘은 믿었던 내가 어벙하게 굴었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가 나서야 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정확해.
나와 그레고르의 팔이 동시에 내려갔다.
그리고, 료슈. 담배는 끄고 얘기하도록.
…난 손 안 들었다만.
……
베르길리우스는 마지막까지 힘차게 뻗은 돈키호테의 팔은 무시하려 듯했지만…
결단코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 꼿꼿한 팔에 어쩔 수 없이 대꾸를 해주는 듯했다.
…그래, 돈키호테. 뭐지?
저 유리 벽은 어떤 용도로 있는 것이오?
모두의 시선이 돈키호테가 가리킨 입국 심사관 안에 있는 유리 벽으로 향했다.
절반 정도를 나누어 놓은 투명한 유리 벽 너머에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일렬로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은 기다린다기보단 아예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있군.
줄을 선 지 꽤 시간이 지난 모양이야.
무장 경호원도 많군. 이곳 인원의 3배.
…대부분 건물에 세워져 있는 유리 벽은 안전을 위한 용도일 가능성이 크다.
뭐~ 쉽게 말하자면 뒷골목 사람들 전용 구역이지. 둥지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어쨌든 제대로 된 비자가 없이 다른 둥지로 가는 건 진짜 진짜 까다롭거든.
왜 검문소 근처에서 목숨까지 걸고 우리를 습격하려고 했겠어? 비자를 강제로 빼앗아서라도 둥지에 가려고 했던 거지.
…그리고 우리가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것이 돈키호테에게는 만족스러운 답변이 되지 못했다.
그 이유가 유리 벽 너머만의 음울하면서도 위압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혹은 지금 유리 벽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 때문인지는 몰랐다.
관리자님, 저희 차례입니다.
<아? 응…>
우리 쪽의 줄은 매우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기에 몇 마디 더 나눌 새도 없이 차례가 다가왔다.
기억하세요. 그쪽에서 어떤 목적으로 왔냐고 하면…
…한 번만 더 말하면 심사관인지 뭔지 하는 놈이랑 만.단.지.예 해주겠어.
이스마엘의 걱정과는 다르게 검문소를 통과하는 과정은 순항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속 그룹,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아, 업무차 림버스 컴퍼니에서 왔습니다. 사원증 확인 부탁드립니다.
…확인했습니다. 다음.
림버스 컴퍼니에서 왔죠. 비즈니스 때문에. 사원증 보시면 된대요.
…확인했습니다. 다음.
이미 앞 선에서 림버스 컴퍼니 소속임을 증명했던 것 때문인지,
검문소 직원은 높낮이 없는 똑같은 질문과 무심한 눈빛으로 얼굴 한 번, 사원증을 한 번 보고 (하지만 속도를 보아하니 눈으로 확인하기보단 관습적인 몸짓에 가까워 보였다) 수감자들을 통과시켜주었다.
……. …….
…저쪽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나 봐요.
하지만 이곳의 유리 벽은 소리까지 차단해 줄 정도로 두꺼운 모양이었는지,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기 힘들었다.
…신경 쓰지 말죠. 잘은 모르지만 날개의 금기를 어긴 모양이에요.
그래. 가난뱅이들이 어긴 금기래 봤자 만족스러울 만큼 충분한 돈을 뒷구멍에 찔러주지 않았다는 것 외엔 더 있겠어?
…지금 저한테 이죽대는 건가요?
허. 뭐야, 신경 쓸 일은 아니라며? 너무 신경 쓰는데.
처음으로 이스마엘을 골리는 데 성공해서 목소리가 커진 히스클리프를 보고 있었는데…
예상했던 인물이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또다시 치고 들어와 버렸다.
소속 그룹,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
약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왔노라!
처음으로 검문소 직원의 얼굴에 감정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경악.
말 그대로 경악이 그려진 표정이 돈키호테를 올려다본다.
저자들을 풀어주게! 고통스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소속 그룹,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검문소 직원은 애써 그 말을 무시하며 계속해왔던 대사만을 반복해서 읊을 뿐이었고,
돈키호테의 심기는 시시각각 나빠져 가는 것이 눈에 훤했다.
그리고.
코드 퍼플, 코드 퍼플. 금기 K185 위반 발생.
트롬보사이트 지원 요망. 재전파, 트롬보사이트…
똑같은 문장 외엔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던 검문소 직원은 이윽고 살벌해 보이는 단어를 무전에 불어넣기 시작했고,
안내합니다. 코드 퍼플, 코드 퍼플. 순환 2동 검문소 14번. 트롬보사이트, 루코사이트.
두꺼운 철문들이 무서운 기세로 닫히며, 무어라 떠드는지 알 수 없는 말과 사이렌이 사정없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냥 대갈통을 부수고 시체 자루에 넣어서 지나갈 걸 그랬어.
그런다고 아주 달라질 건 없었을 것 같지만요.
트롬보, 루코… 각각 혈소판, 백혈구를 의미하는 것 같소만.
저들을 의미하나 보군요. K사와 어울리네요.
파우스트가 손가락을 들어 올린 방향으로 모두가 고개를 돌렸고…
사나운 복장을 한 사람들 역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