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의 고통을 차례차례 겪고 난 후, 수감자들이 다시 모였다.
다들 주눅이라도 들었는지 평소와는 다르게 조용해진 모습이 낯설다.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가, 붉은시선? 요새 통 얼굴 보기가 힘들었는데. ‘둥지 속 우수한 해결사들의 모임’에도 안 나오고…
내가 초대장을 무려 수십 장이나 보냈는데 받지 못한 것인가?
주소 바꿨어. 그리고 당신처럼 충실하게 꼬리 따위 흔들고 있을 여유도 없지.
<무슨 사연이 있는진 모르지만… 베르길리우스가 너무 살벌하게 대하는 거 아니야?>
척 보기에도 둘의 성향이 다르다고 느끼지 않나요, 단테?
<어떤 성향?>
간단히 말하자면, 지크프리트 씨는 해결사 중에서도 날개 친화적인 쪽에 가까웠죠.
반면에 베르길리우스 씨는 해결사만의 독립성을 추구했어요.
영향력이 강한 어느 한 곳에 해결사가 종속되는 순간, 해결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가치마저도 사라진다고 생각했거든요.
힘 있는 자들 한정해선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이니까요.
파우스트와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돈키호테가 덜덜 떨리는 모습으로 지크프리트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까지 본인을 조각냈던 장본인 일텐데, 오히려 그 또한 돈키호테에겐 하나의 영광이었나 보다.
패패패패패…팬이오! 그대의 피규어도 모아놓았소! 한정판은 아니지만… 나도 그대처럼 엄청난 해결사가 되는 것이 꿈이오!
음! 해결사 꿈나무군! 시간이 얼마 없지만, 사인은 해줄 수 있지!
그… 그게 정말이오? 그럼 사인은… 사인은… 여기에… 에헤헤…
숨 좀 쉬어, 돈키호테…
안내합니다. 상황 종료, 코드 퍼플. 상황 종료, 코드 퍼플. 올 코드, 클리어.
음! 일은 성공적으로 끝 마쳤다!
그럼, 또 어디선가에서 보도록 하지! 하하하하!!
엄청난 진동과 함께, 지크프리트는 하늘로 솟아 어디론가로 사라졌고…
우리는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다시 통행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베르길리우스는 버스로 먼저 돌아가 버렸다. 어쩌면, 애초에 지크프리트라는 자와 접선할 거라는 것을 알고 내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소 화가 나 보이는 그의 뒷모습이 신경이 쓰이는 건 나뿐인 듯했지만…
우후, 우후후…
싸늘해진 공기를 홀로 눈치채지 못한 건지, 돈키호테는 지크프리트의 사인이 담긴 종이를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쓰다듬고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관리자 나리! 내 볼따구 한 번만 꼬집어 줄 수 있겠소?
출입 검문소를 나오면서 흰소리를하는 돈키호테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장갑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새로운 적인가? 둥지의 검문소 앞에서 간도 크군.
이 차는… LCC, 청소부서 소속이군요.
파우스트가 무심하게 대답하자마자 장갑차가 열렸다.
비포팀들은 먼저 작전 현장에 도착해 있는 줄 알았는데요.
다른 대원들은 이미 도착해 있을 거야. 너희들이 알면 유용할 추가정보가 있어서 잠시 남아서 기다려 주기로 했지.
음… 어떻든 간에, 우리가 신경이 쓰였다는 거네, 맞지?
푸흐, 너희들도 우리의 매력에 헤어 나오지 못했던 거 아니야?
왜~ 그런 거 있잖아. 귀신같이 맛없는 재료들만 모아 놓아서 요리했는데 묘하게 맛이 있는 거.
맞아, 전장에는 그런 게 많았지. 분명 먹을 당시엔 비참했는데 자꾸 기억에 남는…
…두 분 다 어떤 음식을 드셔 왔던 거죠?
저 그런데, 전달받을 정보란 어떤 것인가요?
이번 목표 지점 말이야, 우리 말고 다른 집단이 점령해 있는 상태인 것 같아.
그래서 우리 쪽에서도 평소보다 많은 인원을 투입하고 있지.
흥, 그래 봤자 또 어디서 모여드는 쇠파리 같은 놈들이겠지.
오티스의 말 대로, 우리는 작전마다 황금 가지 근처에 상주 중이던 다른 집단들과 충돌이 있었다.
첫 번째 작전에서는 G사의 패잔병들이 떠돌이처럼 잔류해 있었고,
두 번째 작전에서는 다양한 갱단들이 카지노에 남아 있었다.
안타깝지만, 이번 상대들은 예전 같은 부스러기는 아닌 모양이야.
심사 기록을 슬쩍 살펴보니까, 몇 주 전 N사에서 대거 파견한 기록이 남아 있었어. 심지어 우리와 목적지가 같더라고.
N사에서요?
공식적으로 드러난 행보는 아니지만, K사 쪽에서도 심사 통과를 해준 걸로 봐선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수도 있지.
즉… N사에서 미리 파견이 와 있는 게 사실이라면, 가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소리랍니다.
…그렇군. 이거 자칫하다 여러 날개를 척지는 건 아닌지 몰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날개 간의 충돌은 불가피한 수순일 거예요.
하지만 N사에서 공식적인 파견을 공표한 게 아닌 걸 봐서는, 단순히 이익집단 간의 충돌로 마무리될 수도 있고요.
어쩌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황금가지가 아니라는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요.
어찌 되었든 여기저기에 써먹기 편한 게 우리라는 건 부정되지 않은 것 같지만…
아. 맞아, K사 입국 관리소에서 소동을 일으킨 멍청이들이 있다고 했는데 혹시 얼굴 봤어?
…소, 소문이라는 건 참 빠르게 퍼지는군. 마치… 로시난테 같소.
돈키호테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떨구었다.
다행히도, 자기가 한 일들이 무언가 민폐로 작용한다는 점은 깨닫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소문이 퍼져서 기쁜 듯이 부끄러워하는 거던가.
아깝지 뭐예요. 그런 광경은 자주 볼 수 있지도 않았을 텐데.
목숨이 여러 개 있는 게 아닌 이상 누가 감히 입국 관리소에서부터 소란을…
<…….>
…….
…설마, 아니죠?
자자, 시간도 얼마 없고 하니 빨리 이동하죠.
이런. 베르길리우스 님은 이번에도 안 계시나 보네.
…아, 그 양반? 먼저 버스로 돌아갔어.
아쉽네요. 이번에야말로 얼굴 한번 비추고 싶었는데…
다음에는 꼭 인사를 하고 말겠어. 너희 대신 우리를 합류시킬 생각은 없냐고도 물어볼 계획이거든.
<뭐야, 그런 속셈으로 보고 싶어 한 거였어?>
마냥 농담은 아니랍니다. 있다가 현장에서 다시 봐요.
너희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면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