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너머로 봤다시피… 이곳은 둥지 한복판입니다. 예상치 못한 소동과는 거리가 제일 멀어야 할 장소죠.
흐음… 그렇다는 건, 진귀한 소동이라는 뜻인가요?
나른한 말투의 홍루만 빼고, 모두가 잔뜩 긴장하며 상황을 살피던 사이…
<음? 저건…>
맞은편에서 누군가 급하게 달려오는 자가 있었다.
앞을 볼 경황조차 없는 듯, 수감자들과 부딪히더니 바닥에 나뒹군다.
헉, 헉… 저, 저기로 가면 안 돼요!
자자, 안심하시오! 우리는 그대들을 지키기 위해 달려온…
영웅 같은 건 아니니까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시죠.
어이, 우린 저 앞으로 가야 돼. 별것도 아닌 걸로 멈춰 세운 거면 몽둥이찜질 당할 줄 알아라.
시민은 험악한 얼굴의 히스클리프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이스마엘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무엇이 더 위협적일지 잠시 고민을 하는 듯했다.
앞… 앞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뭔지는 모르겠어요, 처음 보는 것이… 다들 소리 지르면서 도망치다가… 사람들이 나뒹굴고… 불에 타고….
앞에 있던 것이, 인간의 형태가 아니었나?
…네, 맞아요. 맞아요…!
사람이 아닌 것이라면…
다들 마음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가능성을 묻어둔 채로 소동의 한복판을 향해 나아갔고…
<왜 둥지 한복판에 환상체가 있지?>
파우스트도 보고 받아본 적 없는 현상이네요. 대부분의 로보토미 지부들은 몰락과 동시에 지부 폐쇄를 진행했어요.
유리가 이야기했던 부지 매몰 당시의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곧바로 머리를 흔들어 치워버렸다.
설사 그 사이에 환상체가 탈출을 했더라도, 적어도 이번 작전 직전에는 보고가 있었어야 타당해요.
LCC가 저런 광경을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우니까요.
…저기 있는 사람들은 K사 쪽에서 파견된 직원들일까요?
환상체를 제압하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데요.
으음… 마치 D사 지부에서 신나게 쥐어 터졌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은걸…
아니~ 전에 닭집도 그러더니, K사는 원래 이런 거야? 이제 이런 식의 환영 인사는 사양하고 싶은데…
투덜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으악! 씨…
환상체가 날뛰면서 터져 나온 파편이 우리를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갔다.
하, 뭐해? 얼빠지게 구경만 하고 있다간 우리도, 저 새끼들도!
…모조리 곤죽 행이라고.
…….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저기 제정신 아닌 꼬맹이가 매일 지껄이는 헛소리에 세뇌라도 당한 건가?
오잉? 정신 나간 꼬맹이가 어디 있는 것이오?
길잡이는 분명 소란이 해결된 후에 돌아오라 했지, 우리더러 직접 나서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아니, 넌 뭘 그렇게 개같이 빙빙 꼬아 생각하는 거냐?
방금 못 봤어? 내 대가리가 터질 뻔했잖아! 우리한테 뭔 불똥이 튈 줄 알고!
다 두드려 패버리면 끝날 일을… 뭐, 방석 깔고 구경할까? 치킨 뜯으면서? 어?!
임무와 직결되지 않은 싸움에 구태여 목숨을 저당 잡힐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너희 같은 오물들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죽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전투의 효율도 조금씩 떨어져 간다.
겪어본 고통일수록 더 두려워지는 법이니까.
…….
…하지만 앞에서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는데요?
시간은 걸리고 희생은 많겠지만… 언젠간 제압을 하겠지. 바로 우리처럼.
그리고… 죽을 때마다 부모나 찾으며 울던 녀석이, 몸소 희생을 자처할 줄은 몰랐군.
이제 죽는 것 따위는 우스운가 보지?
…….
수감자들 사이에서 최적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면, 이 자의 말이 맞다.
<나는…>
우리는 해결사가 아니며, 영웅 또한 될 수 없다.
시계를 돌리는 건 당연하게도 언제나 괴롭고,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압하자. 논리적으로 설명은 못 하겠지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
…….
시계 대가리, 너도 똑같은 헛소리를 했다면 시계째로 으깨고 뛰쳐나갔을 거야.
결정이라면, 따르겠습니다.
그래, 뭐… 잘한 선택일 거야.
저… 그렇게 판단해 주셔서 감사해요.
별것도 아닌 일에 쓸데없이 잡생각이 많군, 시계. 예술가는 못 되겠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을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관리자님.
저마다 한 마디씩 남기고 걸어간다.
수감자들이 모두 가버린 후 파우스트만이 남아서 나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왜? 너도 내 판단이 효율적이지 못한 것 같아서?>
아니요, 모든 기억을 되찾은 당신이 어떤 반응을 할지 흥미로워서요.
파우스트의 의미심장한 말에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언제일지 모를 미래보다는 당장의 의문부터 해결해 나가고 싶었다.
<파우스트, 저번부터 궁금했던 건데… 당신 정도 되는 인재가 이런 취급을 받아도 괜찮은 거야?>
파우스트 정도면 충분히 도시에서 호의호식하며 살 텐데.
파우스트는 괜찮아요. 그리고 인재라는 말은 파우스트에게 적합한 단어는 아닌 것 같군요.
인재는 다수가 될 수 있지만, 파우스트는 다수에 포함되고 싶지 않으니까요.
수감자 중에 가장 상식적인 의미의 인재에 대해 논한다면, 이상 씨… 가 있겠네요. 참고로 저는 천재고요.
달려 나가던 수감자들의 뒤를 천천히 따라 걷던 이상이, 우뚝 서서 나를 돌아본다.
아니, 시선이 닿은 곳은 나를 비켜 나간 허공이다.
…그렇지 않소, 나는.
날개짓을 멈춘 지 오래요.
그러니 재능을 논하는 것은, 무용한 짓일 테요, 관리자.
<…….>
신기하게도,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낯설어지는 수감자들도 생긴다.
저 날아다니는 기계는 뭐지? 아까부터 거슬려. 베.싶.생을 3천번째 하고 있는 중.
저건… 드론이라 불리는 것이오.
아, 어쩌면 K사에서 저희를 도와주기 위해 파견한 전투용 드론일지도 모르겠네요. K사는 기술이 평균 수준 이상으로 발전한 둥지 같으니까요.
아니요, 생김새를 보아하니 전투 기능은 따로 마련되어 있진 않아 보여요. 그리고 가운데엔 카메라가 달려 있군요.
뭐… 잘 사는 도시에 이런 난장판이 벌어졌는데 카메라들이 몰릴 만도 하겠네요.
머쓱해진 것 같은 이스마엘이 중얼거렸다.
오오! 우리도 그럼, 뉴우스~ 라는 거에 나오는 것인가?
그런데 이 드론들… 왜…
왜 시체랑 죽어가는 사람들만 찍고 있는 거예요?
뭐, 자극적인 쪽으로 시선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겠어?
이~만큼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뭐 이런 거지 않을까?
하지만…
잠깐 꼬맹이! 앞에!
…난 혼 없는 관객은 좋아하지 않아.
수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 드론…
환상체가 날뛰는 지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봉쇄를 하고 있는 것 같군.
그럴 리가.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굳이 나서서 방해를…
하겠…어…?
이제는 드론 여러 대가 아예 대열을 이루더니, 우리가 다가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일종의 벽을 만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시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10m 이상 물러나 주시기를 바랍니다.
K사의 직원들이 파견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10m 이상 물러나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 잘난 너네 직원들이 다 뒤져가고 있다니까?
안녕하십니까, 시민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10m 이상 물러나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 애초에 말이 안 되는 방송이에요. 이런 난장판에서 고작 10m 이상 물러난다고 안전해지겠어요?
칫,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는구만…
고장이 났던, 설계가 잘못된 것이던, 일단 이놈들을 전부 격추해야 방해 안 받고 환상체한테 붙을 수 있겠어.

